~Wonderful World 2008. 3. 5. 19:05

‘꽃사태’

이경교(1958~ )

지상의 모든 무게들이 수평을 잃기 전, 다만

햇빛이 한번 반짝하고 빛났다

저 꽃들은 스스로 제 안의 빛을 견디지 못하여

그 광도(光度)를 밖으로 떼밀어 내려는 것

야금야금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스스로 빛의 적층을 이루던,

빛도 쌓이면 스스로 퇴화한다는 걸 알고 있는지

도대체 누가 그 붉은 암호를 해독했을까

이웃한 잔가지 한번 몸을 떨 때마다

일제히 안쪽의 문을 두드려 보며

더운 열꽃처럼 스스로 제 체온을 덜어내려는

꽃들의 이마 위엔 얼음주머니가 얹혀있다

체온의 눈금이 떨어질 때마다 연분홍 살 속에 꽂혀있던

눈빛들은 다시 컴컴한 안으로 되돌아 가야한다

몸을 흔들어 수평을 허무는 꽃들이

어두운 고요 속에 일제히 틀어박힐 때

문을 닫기 전, 다만

햇빛이 한번 반짝하고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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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는 암흑물질이 가득하다지요. 빛이 비쳐도 빛나지 않는 별들. 우주나 식물,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사랑도 제 안의 사랑을 못 견뎌 타인에게 흘러나왔듯, 꽃도 그렇잖아요. 이미 빛이 있는 거예요. 사랑도 제 안의 것이 다 흘러나오면 추억이 되어버리죠. 지기 전 한번 반짝하고 빛나는 햇빛, 그게 연분홍 봄꽃의 짧은 사랑, 영원의 떨림인 게지요.

<박형준ㆍ시인>

2008.03.04 20:34 입력 / 2008.03.05 14:23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