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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김혜순(1955~ )
~Wonderful World
2008. 8. 27. 17:07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
김혜순(1955~ )
직육면체 물, 동그란 물, 길고 긴 물, 구불구불한 물, 봄날 아침 목련꽃 한 송이로 솟아오르는 물, 내 몸뚱이 모습 그대로 걸어가는 물, 저 직립하고 걸어다니는 물, 물, 물……내 아기, 아장거리며 걸어오던 물, 이 지상 살다갔던 800억 사람 몸속을 모두 기억하는, 오래고 오랜 물, 빗물, 지구 한 방울.
오늘 아침 내 눈썹 위에 똑, 떨어지네. 자꾸만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으로 가고 싶은 그런 운명을 타고난 저 물이 초침 같은 한 방울 물이 내 뺨을 타고 어딘가로 또 흘러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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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직육면체이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고, 길고 구불구불하기도 하다.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하며 제 존재를 숨긴다. 오죽하면 혜안(慧眼)도 지각(知覺)도 물과 같아야만 으뜸으로 쳐, 상선약수(上善若水)라 칭하지 않던가. 물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지 않고, 스스로 굽히고 순응함으로써, 줄기차게 흘러 이윽고 대해(大海)에 이른다. 지상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오래고 오랜 물. 꽃 한 송이로 솟아올라 생명으로 생성하는 물. 영원이자 천지 기운인 물. 그 우주 한 방울, 눈썹 위로 똑, 떨어져 뺨을 타고 어딘가로 흘러가네. 순명(順命)의 중심으로 흘러가네. <박주택·시인>
2008.08.12 00:2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