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 자리, 진리
‘꽃 진 자리’ - 장지성 (1945∼ )
한 송이 꽃잎에도
내홍이 없었으랴
그 다툼, 시샘들은
지천으로 풀어 놓고
아 진정
꽃들이 아름다운 것은
낙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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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는 ‘봄밤’에서 “꽃들이 낙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만발하는 봄밤”이라고 썼고, 이형기는 ‘낙화’에서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썼다. 장지성의 시조 ‘꽃진 자리’에서의 종장 “아 진정/꽃들이 아름다운 것은/낙화가 있기 때문이다”와 상호 텍스트성의 관계에 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솔로몬의 말은 후기모더니즘의 금과옥조로 사용된다. 이형기, 최승호, 장지성의 상호 텍스트성 내용은 현재를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태도다. 현재에는 몰락도 포함된다. 몰락을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태도다. <박찬일·시인>
2008.11.22 00:07 입력 / 2008.11.22 00:08 수정
‘진리’ - 안수환(1942∼ )
나는 머리를 손질했다
나는 손톱을 손질했다
수염을 깎고 향유를 발랐다
내 몸이 가벼워졌다
진리는 가벼운 것, 이처럼 가벼운 것
화장실로 들어간 아내가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내버려두어야지 상쾌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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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들어간 아내가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큰일났다. 30분이면 충분히 죽을 수 있는 시간이다. 한쪽은 “머리”와 “손톱을 손질”하고 “수염을 깎고 향유를 발라 가벼워”지고, 한쪽에서는 목을 매 “상쾌함”을 느끼고. 프랑스어에 ‘세라비’라는 말이 있다. ‘인생이 그런 거지’라는 뜻. 시적 화자는 아내가 배설을 통해 가벼움 혹은 상쾌함을 느낀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수용미학의 금과옥조는 ‘모든 사람은 텍스트를 다르게 읽는다’이다. 화장실에 들어가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으면 의심해볼 일이다. 나는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박찬일·시인>
2008.11.21 00:4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