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연애의 법칙’ - 진은영(1970∼ )
~Wonderful World
2009. 1. 18. 13:22
‘연애의 법칙’ - 진은영(1970∼ )
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부드러운 모래로 갓 지어진 우리의 무덤을
낯선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해변의 따스한 자갈, 해초들
입 벌린 조가비의 분홍빛 혀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던
하얀 발가락으로
우리는 세계의 배꼽 위를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포옹한다
수요일의 텅 빈 체육관, 홀로, 되돌아오는 샌드백을 껴안고
노오란 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권투선수처럼
안녕! 아침엔 짐승의 발자국을 보았어. 우리가 스스로를 묻었던 곳, 어쩌면 서로를 묻었던 곳. 그 무덤 속의 영생을 믿었네. 안녕! 백리향을 지나온 손가락과 너의 잠, 그리고 해변의 자갈과 해초들. 우리 발밑엔 우주의 젖을 빨던 탯줄이 묻혀 있고, 분홍빛 혀로 훔쳤던 네 몸의 마지막. 안녕! 송환되지 않는 내 존재의 샌드백아. 너를 안고 무너지는 텅 빈 고독아. 연애야! 저기 어슬렁거리는 짐승과 함께. <신용목·시인>
2009.01.07 00:5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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