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마흔네 개의 눈사람’-최승호(1954~ )

~Wonderful World 2009. 2. 20. 01:14

‘마흔네 개의 눈사람’-최승호(1954~ )


밝혀진 바에 의하면 사람은 일년에 자신의 몸무게 정도의 죽은 세포와 세균을 배설한다고 한다

그 허옇게 죽은 것들을 뭉쳐서 눈사람을 만들면 사람들은 해마다 보기 싫어도 자신의 분신(分身)인 회색 눈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올해 나는 마흔네 살이 된다

올겨울에는 마흔네 명쯤의 눈사람을 거느리게 되는 셈인가

해마다 나는 눈사람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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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눈이 적었던 겨울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벤치에 앉아 해를 올려다볼 때마다 둥글게 서 있는 눈사람이 보입니다. 어느새 마음은 스르르 녹아 먼 시내를 떠돌고 있겠지요. 우리도 어느 물굽이에서는 기어이 한 모금의 물살로 섞일 것을 압니다. 그리하여 다시 어느 겨울, 우리가 나란히 눈송이가 되어 지상에 내린다면, 그 눈으로 당신은 몇 번째 눈사람을 굴릴 건가요? 나는 그 눈사람 속에서 모든 나이를 잊고 하얗게 잠들겠습니다. 돌아볼 때마다 삶은 눈 내리는 들판 하나씩 거느립니다. <신용목·시인>
2009.02.20 00:4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