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수몰(水沒)’-윤제림(1959~ ), 당신을 사랑합니다’ - 유자효(1947~ )

~Wonderful World 2009. 3. 31. 07:34

‘수몰(水沒)’-윤제림(1959~ )

 

 

만나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싶었으나,

밤새 끌어안고 전부터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사랑의 동작들과 먼 나라 구름으로부터 배운

새로운 체위를 다 한 번씩은 해보고 싶었으나,

나 없는 새에 너무 커지고 깊어지고 넓어진

그대, 발가락 끝이나

간질이다가 돌아가노니.


--------------------------------------------------------------------------------
가뭄에 수몰된 옛 마을 자락 흔적 드러나고. 물 오른 연둣빛 능수 가지 휘휘 늘어져 진달래는 피어오르고. 제목 보아하니 울긋불긋 꽃대궐 고향 물에 빼앗긴 실향민 눈시울 붉어지겠는데. 이 무슨 능청이고 해학인고. 아닌 대낮에 포르노라니. 기기묘묘 자유자재로 피어오르는 흰 구름 섹스 체위라니. 그런데도 하나도 낯짝 뜨겁고 밉지 않으니. 향수(鄕愁)를 이렇게 육감적으로 풀며 고향 다시 부여안는 시심의 여유와 깊이. 웃고 있어도 눈물나게 하노니. 이경철·문학평론가
2009.03.31 00:48 입력


'당신을 사랑합니다’ - 유자효(1947~ )

 

 

절망에 찬 울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누지 못하는 연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일상이 돼버린 불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병을 똑같이 앓으시는

당신을 사무치게 사랑합니다


--------------------------------------------------------------------------------
가누지 못하는 연민, 불면의 밤도 얼마나 깊어지면 사랑이 되나. 물같이 흐르는 사랑이 되나.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는 일상의 종교적 신념이 되나. 내 병 똑같이 앓으시는 당신, 당신 병 똑같이 앓는 나. 나와 당신, 우주는 똑같은 한 몸이라는 불이(不二)의 마음 바탕. 그 연민, 그 사랑 얼마나 사무쳐야 물같이 흐르는 시가 되나.

이경철·문학평론가 2009.03.30 02:00 입력

 

 

‘낙화유수’-조명암(1913∼1993)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이 강산 흘러가는 흰 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 울어 춘삼월이냐

홍도화 물에 어린 봄 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포구로 가자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보내고 가는 것이 풍속이더냐

영춘화 야들야들 피는 들창에

이 강산 봄소식을 편지로 쓰자


--------------------------------------------------------------------------------
반갑게 봄 맞는다 하여 영춘화(迎春化). 메마른 도심 야들야들 물오른 연둣빛 가지 노란꽃 터뜨리며 봄을 불러. 정년 앞둔 선배 잘도 불렀던 남인수의 ‘낙화유수’ 꽃다운 인생살이로 흘러들고. 사랑은 흐르고 인정은 남아 흘러간 옛님 세월 아쉬운 꽃철. 서정적 노랫말 지어 일제하 민족 함께 울게 한 시인. 장원급제 어사화 낭창낭창 드리우고픈 영춘화 꽃가지. 이경철·문학평론가

2009.03.28 00:22 입력

 

 

‘상리과원(上里果園)’ 중 -서정주(1915~2000)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나 낙동강 상류와도 같은 융융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중략)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 하나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
좀체 길게 쓰지 않던 시인이 이 시에서는 긴 편지투다. 꽃에 취해 즐거운 웃음꽃판 한번 흐드러지게 벌이자는 결의다. 그것도 6·25 직후 잿더미 속 깡마른 몸과 마음으로. 여하튼 이 꽃계절 섣불리 낙담치는 말 일이다.

이경철·문학평론가
2009.03.27 00:51 입력

 

‘수몰(水沒)’-윤제림(1959~ ),당신을 사랑합.txt

 

 

‘수몰(水沒)’-윤제림(1959~ ),당신을 사랑합.txt
0.0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