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담쟁이’ 중-도종환(1954~)
~Wonderful World
2009. 4. 9. 08:34
‘담쟁이’ 중-도종환(1954~)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콘크리트 벽 버석버석 마른 담쟁이 줄기와 잎. 푸른 기운 내비친다. 이 봄 우리는 위대한 도전을 보았다. 넘어지고 깨지면서 다시 일어서 세계의 벽을 넘어선 감동. 환호만 보내고 말 것인가. 바닥이 밑천이다. 절망을 푸르게 꽉 부여잡고 넘는 담쟁이 벽. 이제 그대가 넘을 차례다.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