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꽃 -이근배(1940~ )
냉이꽃 -이근배(1940~ )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
어머니가 흘린 땀이 자라서
꽃이 된 것아
너는 사상을 모른다
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
잠 못 드는 평생인 것을 모른다
초가집이 섰던 자리에는
내 유년에 날아오던
돌멩이만 남고
황막하구나
울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하는
내가 자란 마을에 피어난
너 여리운 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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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에 냉이 널려 봄 입맛 끌고 있으니 냉이꽃 곧 피어오르겠다. 눈 이불 덮은 여린 보리와 땅 속 봄심 지피는 달래와 함께 끓이면 까실하고 상큼했던 봄 여물. 시인이 직접 이 시 읊으니 우리 시대 재야운동 상징인 한 사상가 그대로 감읍하시데. 순정한 사회 부르려다 잠 못 든 평생 그대로 떠오르시는지. 들녘과 야산 한데에서 줄기차게 피어나는 냉이꽃, 그런 순정한 사상과 사람 있어 세상은 부패해도 그냥 썩어 문드러지지는 않는 것. <이경철·문학평론가>
사람들 - 강민숙(1962~ )
봄은
얼음장 아래에도 있고
보도 블록 밑에도 있고
가슴 속에도 있다
봄을 찾아
얼음장 밑을 들여다보고
보도 블록 아래를 들추어 보고
내 가슴 속을 뒤지어 보아도
봄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버스,
엘리베이터 속에서
나는
봄을 보았다
봄은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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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잘 쇠셨는지요. 고향의 정 만끽하셨는지요. 눈 속에서 봄기운 예감하셨는지요. ‘이래도 시가 될 수 있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시 참 쉽고 솔직하고 자연스레 흐르네요. 그러나 요즘의 어려운 시들은 한참 벗어나 있는 이런 것들이 시의 미덕인 것을. 가장 봄다운 것은 결국 사람들 사이의 소통 아니겠습니까. 자 이제 사람들 세상으로 정답게 봄 맞으러 가세요. 당신이 봄이 되세요. <이경철·문학평론가>
다림질을 하면서 - 김서희(1965 ~ )
주름진 당신의 시간들을
하나하나 펼쳐본다
꼬깃꼬깃한 셔츠 깃, 소매 자락
고온 열로 쫙 - 쫙
뜨거운 길을 낸다
하얗게 몽쳐진 옹이가 맺혀있어
스쳐 지나는 그 흔적이 아프다
날을 세운다
빳빳이 깃 날을 세운다
물컹하면 견디기 힘든 세상
물기 젖은 당신의 내일에
자존을 세운다
야무진 내 기도를
함께 눌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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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질을 하면서도 내외간은 또 하나가 되는군요. 지나온 당신의 시간과 나의 시간마저 겹쳐지는군요. 애증(愛憎)에 몽친 마음의 주름들도 쫙-쫙 펴지는군요. 당신 일상의 자존을 세우기 위한 기도까지 함께 눌려지는군요. 명절이나 절기 또한 이런 마음 다잡는 다림질일 것을. 설 쇤 마음 빳빳이 깃 날 세우고 자존의 힘찬 일상 맞으소서. <이경철·문학평론가>
설날 아침에 -김종길(1926~ )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중략)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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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섣달그믐 까치들 설날. 실낱같이 사그라지는 그믐달 아쉬워 까치처럼 왁자지껄 밤새우다 맞는 우리들의 새해 설. 신년 들어 다잡았는데 어지간히 풀린 마음 다시 여미소서. 너무 각박하지는 않고 넉넉하게. 어린것들 잇몸에 피어나는 고운 이빨, 고목 가지에 돋아나는 연둣빛 여린 잎새 보듯 설은 그렇게 맞으소서.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