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산보 -파블로 네루다(1904~73), 여름밤-이준관(1949~)

~Wonderful World 2010. 8. 7. 08:30

'산보' -파블로 네루다(Pablro Nerudk-1904~73)

 

 

내가 사람이라는 게 싫을 때가 있다.
나는 양복점에도 들어가보고 영화관에도 들어가본다
펠트로 만든 백조처럼 바싹 말라붙고, 防水(방수)가 되어,
자궁들과 재의 물 속으로 나아간다.

이발관 냄새는 나로 하여금 문득 쉰 소리로 흐느껴 울게 한다.
내가 오직 바라는 건 돌이나 羊毛(양모)처럼 가만히 놓여 있는 것.
내가 오직 바라는 건 더이상 상점들을 보지 않고, 정원들,
상품, 광경들, 엘리베이터들을 보지 않는 것.
 
내 발이 싫어지고 내 손톱과
내 머리카락 그리고 내 그림자가 싫을 때가 있다.
내가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싫을 때가 있다.

하지만 멋진 일일 거야
한 송이 자른 백합으로 법원 직원을 놀라게 하고
따귀를 갈겨 수녀를 죽이는 건 말야.
참 근사할 거야
푸른 칼을 들고 거리를 헤매며
내가 얼어죽을 때까지 소리지르는 건 말야.

나는 줄곧 암흑 속에서 뿌리로 있는 걸 바라지 않는다.
불안정하고, 길게 뻗어 있으며, 잠으로 몸서리치고,
땅의 축축한 내장 속으로, 계속 내려가,
흡수하고 생각하며, 매일 먹는 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너무 심한 비참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계속 뿌리나 무덤이기를 원치 않는다,
시체들의 창고인 땅 밑에서 혼자
거의 얼어서, 슬픔으로 죽어가는 걸 원치 않는다.

그게 바로 월요일이, 내가 가책받은 얼굴로
오고 있는 걸 볼 때, 개솔린처럼 불타고,
상처입은 바퀴처럼 진행하면서 울부짖고,
밤을 향해 가며 따뜻한 피로 가득찬 자국을 남기는 이유.

그리고 그건 나를 어떤 구석으로 몰아넣고, 어떤 축축한 집으로,
뼈들이 창 밖으로 날아나오는 병원들로,
식초냄새 나는 구두방으로 몰아넣고,
피부가 갈라진 것처럼 끔찍한 어떤 거리로 몰아넣는다.

유황색 새들, 내가 증오하는 집들 문 위에 걸려 있는
끔찍한 내장들
커피포트 속에 잊혀진 틀니,
수치와 공포 때문에 울었을
거울들,
사방에 우산들, 毒液(독액), 그리고 탯줄.

나는 조용히 거닌다, 두 눈을 가지고, 구두와
분노를 지니고, 모든 걸 잊어버리며,
나는 걷는다, 사무실 건물들과 정형외과 의료기구사들 사이로,
그리고 줄에 빨래가 널려 있는 안뜰들 ㅡ
속옷, 수건, 셔츠들에서 더러운 눈물이 떨어지고 있는 거길 지나서.
 
네루다 Pablo Neruda
본명은 Neftalí Ricardo Reyes Basoalto.
1904. 7. 12 칠레 파랄~1973. 9. 23 산티아고.
칠레의 시인·외교관·마르크스주의자.

----------------------------------------------------------------

 

때때로 사람 되기가 힘드는 걸 느끼진 않는지? 또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라고 생각되진 않는지? 네루다의 인식은 양복점·영화관 같은 소소한 삶터에서 느닷없이 달려온다. 때로는 지나치는 뜰에 걸려 있는 빨래들의 펄럭임에서도. 하긴 삶은 ‘산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산보’가 시가 된다. 거기서 그 어떤 느닷없는 인식을 건지기만 한다면?   < 강은교·시인>

 

 

'여름밤' - 이준관(1949~ )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 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후략)

---------------------------------------------------------------------------------------------

 

마치 장욱진의 그림이라도 보는 느낌이다. 별이 가득 떠 있는 밤하늘, 동그마니 무릎을 안고 앉아 있는 아들, 그 옆으로 달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가락에 달을 달아준다. 추억이 회중전등처럼 켜진다. 추억 속에는 젊은 날의 아버지가 어른거린다. 수만 꿈들이 달과 함께 추억의 커튼을 펄럭거리며 흩어진다. 별들 사이에 들어 있는 한 사람의 역사. 우리 모두 그런 추억의 액자를 가지고 있다. 추억의 액자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대답 하나. 기다리자, 그 대답을. 하늘가에 뿌리자. 시가 되어. <강은교·시인>

 

산보 -파블로 네루다(Pablro Nerudk-1904~73).hwp

 

 

산보 -파블로 네루다(1904~73).hwp
0.01MB
산보 -파블로 네루다(Pablro Nerudk-1904~73).hwp
0.0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