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도종환(1954~)

~Wonderful World 2010. 10. 27. 13:56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도종환(1954~)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고 싶다

자꾸만 거창해지는 쪽으로

끌려가는 생을 때려 엎어

한손에 들 수 있는 작고 단출한 짐 꾸려

그 여자 얇은 아래턱과 어깨 사이에

쏙 들어가는 악기가 되고 싶다

왼팔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내 몸의 현들을 그년가 천천히 긋고 가

(중략)

바이올린 소리의 발밑에

동전바구니로 있어도 좋겠다

거져 던져 주고 간 몇 잎의 지폐를 들고

뜨끈한 국물이 안경알을 뿌옇게 가리는

포장마차에 들러 후후 불어

밤의 온기를 나누어 마신 뒤

팔짱을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 수 있다면

 

---------------------------------------------------------------------------

 

가난하디가난한 현과 현 사이의 공간이 떨린다.  이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음이 울

리는 것이리라.  누가 바이올린은 어떻게 해서 발명되었느냐고 물으면, 이 시를 들려

주리라.  작고 단출한 행장으로 그녀의 아래턱과 어깨 사이에 쏙 들어가고 싶은 꿈,

모든 시는 결국 낭만적인 정신의 소산이다.

<손택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