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동길산
한 자리-동길산
나 하루도 한 자리에 있지 못했네
나 하루도 나무가 되지 못했네
하루가 다 뭐람
나 하루의 반도 한 자리에 있지 못했네
나 하루의 반도 나무가 되지 못했네
한 자리에 있어
달은 어느 달이 어떻게 빛나는지
나무가 되어
잎은 어느 잎이 어떻게 빛나는지
하루도 보아주지 못했네
가지 않은 자리는 언제나 있어 보였고
가 보아야 직성이 풀렸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인양
하다못해 한 발짝이라도 움직여야 직성이 풀렸네
알고 보면 그 자리가 그 자리
그것도 모르고
나 하루도 한 자리에 있지 못했네
나 하루도 나무가 되지 못했네
- 시집'뻐꾸기 트럭'에서
▶동길산=1960년 부산 출생.1989년 무크지 '지평' 등단. 시집 '을축년 詩抄' '바닥은 늘 비어 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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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 자리 못 박힌 저 노거수도 비바람 눈 속을 맨발로 지금껏 끊임없이 달려온 걸요. 아직도 쿵쾅거리는 심장으로 초록땀을 줄줄 흘리면서 단 하루도 제자리걸음을 한 적이 없데요. 자신을 개간하는 일에 혼신을 다한 전력투구는 제 몸이 그 기록장이래요. 우린 우리가 걸어온 길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저 나무들은 빠짐없이 모두 기억한답니다. 물론 환경적 조건반사겠지만 나무도 자연색이란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군요. 우리가 쓰는 물감이란 유치하기 짝이 없데요. 특히 초록의 스펙트럼은 인간의 감성으론 따라잡을 수 없는 간극이 있데요.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것들은 다 같은가 봐요. <박정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