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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천국-이영광(1965~)

~Wonderful World 2011. 1. 7. 12:21

아픈 천국-이영광(1965~)

 

101동과 103동 사이 탄환처럼 새들이 빠져나간 자취가 몇가닥 활로(活路) 같다.

 

세들어 사는 자의 까칠한 눈으로, 나는 내가 먼 빛의 명멸을 봤다는 생각이 든다. 

쨍한 무심결의 일순, 아연실색할 악착이 유리 같은 불안이 심중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깃털처럼 파란이 남아 아물대는 허공.

 

눈 그친 뒷산 잡목숲이 생가지 분지르는 소리 이따금씩 들려오고

놀던 아이가 별안간 넘어져 크게 울고, 젊은 어머니가 사색이 되어 뛰어나오기도

한다.  다친 몸을 더 다친 마음이 새파랗게 여미어 안고 간다.

 

실직과 가출, 취중 난동에 풍비박산의 세월이 와서는 물러갈 줄 모르는 땅

고통과 위무가 오랜 친인척관계라는 곤한 사실이야말로 이생의 전재산이리라. 

무릎 꿇고 피 닦아주던 젖은 손 울던 손.

 

사색(死色)이란 진실된 것이다.  아픈 어미가 그러했듯 내 가슴에도 창백한 그 화석

다발이 괴어 있어, 오그라들고 까무러치면서도 한 잎 두 잎 쉼없이 마침내 두려움 없

는 한 장만을 남길 것이다. 

 

이 골짜기에는 돌연이었을 건축들 위로 출렁이는 구름전함들이 은빛 닻을 부리고 한

호흡 고른다.  깨뜨리고 싶은 열투성이 의식불명을 짚고 일어나 멀고 높은 곳에 불현

듯 마음을 걸어두는 오후.

 

저 허공은 한번쯤 폭발하거나 크게 부서지기 위해 언 몸 가득 다시 청색의 피톨들을

끌어모으는 중이지만, 전운이란 끝내는 피할 수 없는 것, 다만 무성한 속절의 나날에

대하여 나는

 

괴로워했으므로 다 나았다, 라고 말할 순 없을까.

살 것도 못 살 것도 같은 통증의 세계관 가지고 저 팽팽한 창밖 걸어가면 닿을까,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환청처럼 야위는 하늘의 먼 빛.

 

가시숲에 긁히며 돌아오는 지친 새들도, 아까징끼 바르고 다시 놀러나온 아이도, 장기

휴직중인 104동의 나도 사실은 실전의 정예들

 

목숨 하나 달랑 들고 참전중이었으니.

아픈 천국의 퀭한 원주민이었으니.

 

시집 '아픈 천국'중

 

아픈 천국-이영광(1965~).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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