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바구니 속의 계란-최명숙(1960~2003)
~Wonderful World
2011. 1. 8. 22:27
바구니 속의 계란-최명숙(1960~2003)
나는 아름다운 장기수
탈출을 꿈꾸지
결혼 일년 반, 임신 육개월의 배를 끌어
안고서
주위를 둘러싼 소리 없는 장막
저 찬란한 가을햇살을 찢고 달아나는 탈출을 꿈꾸지
(중략)
뱃속의 아이에게 들릴 만큼 놀랄 만큼
소리 질러야지
계란 사시오, 계란 사시오-
깨지는 건 순간이야
앞뒤 구멍 내서 날계란 후루룩 마실 때의
비릿한 뒷맛
손에서 미끄러지면 끝장인 껍질
삶의 껍질을 끝까지 볏겨본 적 있던가
바구니 속의 계란 삼십개
고이 들고 온 이것이 인생의 황금기였나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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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희소병으로 일찍 갔다. '바구니 속의 계란 삼십개/고이 들고 온 이것이 인생의 황금기
였나'라는 두 구절을 마지막 사리 알로 내놓고 대면한 적 없이 간 시인이 섭섭할 것은 없지만,
더이상 이 시인의 시를 볼 수 없게 된 것은 섭섭하다. 유고시집에서 뽑은 이 두 구절 내 것인
것만 같아, 속이 쓰려 몇 계절을 질투하며 심심하지 않았다. 투명하고 범상하게 흘린 답. 더
이상 답은 없다며 듣고 싶은 말을 들었을 때처럼 얼마나 흡족였는지. 시 읽기의 기쁨! 나한테
는 그랬다. <이진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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