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진이정(1959~93)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진이정(1959~93)
흐르는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꽃이라고 별이라고 그대라고 명명해도 좋을까요 그대가 흘러갑니다 꽃이 흘러갑니다 흘러흘러 별이 떠내려갑니다 모두가 그대의 향기 질질 흘리며 흘러갑니다 그대는 날 어디론가 막다른 곳까지 몰고가는 듯합니다 난 그대 안에서 그대로 불타오릅니다 그대에 파묻혀 나는, 그대가 타오르기에 불붙어 버렸습니다 지금 흘러가는 <이때>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중략)… 시간이 흐릅니다 나도 저만치 휩싸여 어디론가 떠내려갑니다 아아 무량겁 후에 단지 한 줄기 미소로 밖엔 기억되지 않을 그대와 나의 시간, 난 찰나를 저축해 영겁을 모은 적이 없건만 이 어이된 일입니까 미소여 미소여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솜털 연기 나비라고 명명해봅니다 엉터리 작명가라 욕하지 마셔요 당신이 흐르기에 나는 이름 지을 따름입니다 흐르는 당신 속에서 난 이름 짓는 재주밖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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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름의 노예, 오늘의 이름은 2012년 1월 2일, 시간을 뚝 끊어 놓고 다시 시작하듯 이 시간에 새 이름을 붙여 시작한다. 무량겁 후에 단지 한줄기 미소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그대와 나의 시간, 흐르는 시간 속에서 시인은 이름 짓는 재주밖에 없다. 지금은 우주 저쪽의 시간 속에 있을 고(故) 진이정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불쏘시개로 자신을 태워 세차게 불타올라야 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 속에서 당신과 나, 세상의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은 생명을 다하여 불타오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최정례·시인>
◆최정례=2012년 새해 1월부터 최정례(57) 시인이 ‘시가 있는 아침’을 연재합니다. 고려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최 시인은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론 『내 귓속의 장대나무숲』 『햇빛 속에 호랑이』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등이 있습니다. 최 시인은 “문학적 업적이 뚜렷한 선배 시인 의 시부터 시작해 젊은 시인 의 시로 옮겨올 생각이다. 간간이 외국시도 소개하고 싶다”며 “시에 설명을 붙이기보다 시와 함께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