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시들...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 이성복(1952~ )

~Wonderful World 2012. 1. 11. 22:20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성복(1952~ )


시의 첫 구절에 무엇이 들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무심코 지나가는 말이거나 심심풀이로 해본 말, 우리가 말하기 전에 말은 제 빛깔과 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시의 둘째 구절은 무염수태(無染受胎), 교미도 없이 첫 구절에서 나왔지만 빛깔과 소리는 전혀 다른 것. 시의 셋째 구절은 근친상간, 첫 구절과 둘째 구절 사이에 태어났으니, 아들이면서 손자, 딸이면서 손녀. 눈 먼 외디푸스를 끌고 가는 효녀 안티고네. 말들의 혼례가 끝나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도, 우리는 정말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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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는 법을 말해주는 시다. 시는 할 말(주제)을 정해두고 시작과 중간과 끝(구성)을 궁리해두고 논리에 맞게 적어가는 글이 아니다. 그건 연사이거나 변사의 문법. 시는 무심하거나 심심한 말, 그냥 거기에 있던 세상의 말 하나에서 시작된다. 그 말이 아비도 없이 새끼를 친다. 그래서 시는 신화와 닮았다. 세상이 있으니 누군가 그것을 낳았을 것이다. 이 ‘낳는 이’를 대지모신이라 한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가 ‘낳은 이’인 자식과 짝을 이루니 이것이 근친상간이다. 시의 수태고지란 이 시의 진짜 주인이 시인 자신이 아니라는 통지에 지나지 않는다. “신이여, 정녕 이걸 제가 썼단 말입니까?”라고 감탄하는 시인에게 신이 대답하신다. “에이, 설마….” 대구 사는 큰 시인께서, 통 크게 영업 기밀을 누설하셨구나. 오늘은 어린이날. 한번쯤은 시의 어린이날을 기념해 보고도 싶었다. <권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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