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집- 이학성(1961 ~ )
소리의 집- 이학성(1961 ~ )
귀는 멀리서 오는 소리를 듣는다
귀 속에는 여러 갈래 길이 아래로 뻗어 있다
그 길 밟으며, 가만
저물녘에 사내들이 돌아온다
저문 날 사내들이 문짝을 젖히며 들어가는 소리
밥그릇들 상머리에서 마구 부딪치는 소리
계속해서 소리들이 귀를 흔든다
그 길에 그러나 마을로 가는 막차가 떨어진다
길을 따라 피어오른 아낙 같은 들꽃들이
한뎃잠 깨어, 가만
돌아오지 못하는 한 사람 기다리며
늦은 새벽까지 추운 몸을 이슬에 묻는다
귀는 머언 길에서 오는 소리를 듣는다
낯익은 발자국 소리 하나가 귀를 타고 내려
온몸을 울리면서 희미하게 굴러 떨어진다
아주 멀리 있는 소리로 귀는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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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견뎌내는 귀가 있다. 귀를 타고 내리는 소리가 온몸을 울리도록 견디면서 가는 어떤 일생이 있다. 긴 병으로 누워 지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몸을 일으킬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소리의 집에서 소리를 보며 노는 것. 듣는 것을 넘어 생생히 소리를 보고 보는 것. 잠도 물러났을 것이니, ‘멀리서 오는 소리’ ‘머언 길에서 오는 소리’ ‘아주 멀리 있는 소리’일수록 더 생생히 끌어올 수 있다. ‘멀다’는 부사의 빈번한 발로는 자신과 현실의 거리가 그만큼 아득하게 떨어져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 몸이 있어도 몸이 없는 자가 된 사람의 존재감이란 광막한 바다의 모래밭으로 떨어져 나온 조가비 같은 것. 조가비의 하얀 외로운 마음이 기억 속 ‘길을 따라 피어오른 들꽃들의 한뎃잠’을 늦은 새벽까지 돌본다. <이진명·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