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시들...
역전 식당 - 김혜수(1959~ )
~Wonderful World
2012. 1. 11. 22:30
역전 식당 - 김혜수(1959~ )
국밥을 주문해놓고
티브이 화면 속 무균실 유리상자 안에서
밥숟가락 뜨는 아이를 보네
육체에 배달되는 밥이라는 세균
병 깊어 투명한데
밥 한술 뜨는 게 필생을 기울이는
의식이어서 읍하고 서서
마음으로 대신 밥을 먹고 있는 어미
먹는 게 아니라 다만
먹어두는 밥이 있네
서둘러 한술 뜨는 역전 식사
식탁을 가로질러 모서리에서 툭
급하게 사라지는 햇살
유리문을 밀고 왁자하게 밀려왔다가
왁자하게 쓸려나가는 발자국에
이상한 고요가 묻어 있네
한칸의 정적 부려놓고 기차 떠나네
가벼운 흥분으로 와글거리다
잦아드는 기다림의 끝에
마주하고 싶은 밥이 있네
식어버린 선지처럼 겉돌며
역전 식당 창가에 앉아
일렬로 늘어놓은 화분들을
오래도록 내다보고 있는
저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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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이라면 경계지대. 도착 이야기보다는 떠나는 이야기가 많이 쓰이는 곳. 저 어디로 가기 전 다만 먹어두어야 하는 밥이 많은 곳. 티브이 화면 속 무균실에서 제 어미가 절절히 지켜보는 앞에서 밥숟가락을 뜨는 병 깊은 아이처럼, ‘먹는 게 아니라/다만 먹어두는 밥’을 먹는 역전 식당. 떠나는 설렘보다는 떠나도 못 떠나는 비애가 커튼처럼 드리워 있다. 왜 아닐까. 온 곳도 모르고 가는 곳도 모른 채 우리 ‘사는 거라기보다는 다만 살아두는 생’이기도 하다는 걸 눈치 챈 시인이라면. <이진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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