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7번 국도변 - 이윤학(1965~ )
~Wonderful World
2012. 3. 1. 10:24
7번 국도변 - 이윤학(1965~ )
검정 모자를 눌러쓴 눈 나쁜 아비와
늦둥이 딸아이가 캥거루가 되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왼손을 내밀어 코스모스를 훑는 딸아이와
홀아비 냄새를 뒤로 피우는 아비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7번 국도변을 역주행으로 지나간다
영재유치원 가방이 핸들에 걸려 지나간다
체인 집 긁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지나간다
신문지에 말아 싼 제수용 북어포가
짐칸 고무 바에 묶여 지나간다
창문을 연 시외버스가
커튼을 쳐 매고 지나간다
아비의 가발과 모자가 날아간다
아비는 자전거를 멈추고
받침대를 세워 올린다
허옇게 드러난 아비의 대머리
놀란 딸아이가 몸을 틀어
허둥대는 아비를 바라본다
속내를 다 드러낸 코스모스가
끊임없이 피어 있는 7번 국도변
가발을 씌워주는 딸아이와
부끄러운 아비가 마냥 웃고 있는 7번 국도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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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가 된 늙은 홀아비와 어린 딸이 자전거에 실려간다. 체인 긁히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낡아빠진 자전거다. 꾀죄죄한 커튼을 묶어 맨 시외버스도 달려간다. 삶의 누추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7번 국도변의 풍경이다. 그래도 딸아이는 영재유치원에 다닌다. 가발을 씌워주는 딸아이와 아비의 모습이 어둠 속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환하다. 웃음도 전염된다. <최정례·시인>
7번 국도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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