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갈대 - 송재학(1955~ )
~Wonderful World
2012. 3. 15. 19:36
갈대 - 송재학(1955~ )
일곱 살 때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금호길, 갈대 서걱거리는 금호(琴湖)라는 의성어를 날것으로 들었던 그때 새 신발이 아니라도 십 리 길은 멀고 높았다 외가에서 큰집까지 지금도 그 길의 되돌이음표를 새기면 몸의 뒤축은 아프다, 아프다 못해 잘린 팔의 허공이 가렵듯 아버지에게 매달렸던 수많은 내 오른손은 이제 잡아야 할 아버지 없어 연신 가렵고 아프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불러보는, 기계충처럼 솎인 갈대가 외치는 짐승의 음성이 여리고 목 쉰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릴 때 아버지와 손잡고 걸었던 금호길, 그냥 소리로만 익힌 지명인데 이젠 그 길이 아버지의 일부가 되었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내 손, 무심코 그리고 수없이 손을 뻗어 아버지를 더듬어 보았는데 근질근질하고 아픈 감각만이 팔과 손끝에서 느껴질 뿐이다. 길가 갈대밭에서 갈대가 외치는 소리, 나 대신 혈육을 잃은 짐승의 목소리 같다. 상실의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빈자리다. 이 시인의 시가 다감한 언어로 늘 촘촘한 것은 그 자리를 메우려고 하는 무의식적 의도가 아닐까. <최정례·시인>
갈대.hwp
0.0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