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 황학주(1954~ )
지상 - 황학주(1954~ )
여기는 이상하다 이상하게
한 사람씩 온다
다시 올 일 있을까 싶다
나란히 신발 벗을 때는
모르지만
이상하다 이상하게
한 사람씩 나간다
모텔 같다
여기는 물감냄새가 난다는 게 문제지
사랑만 필요했던
연인들이
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
시간의 종업원이 똑똑똑 노크를 하거나
전화벨을 울려주기까지 하는 곳
슬픈 것은 사랑을 보는 모텔 주인의 생각이며
거기서 나온 인테리어 솜씨일 뿐
이상하고 또 이상해도
여기서 서화를 그릴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나는 가고
당신은 오는 것을 잊는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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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여기 왔기에 왜 왔는지를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지상을 집이 아니라 모텔에 비유함으로써 이 시는 그 이유를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집의 나날에서 다 버리고 사랑만 남긴 것이 모텔의 시간이다. 따로 왔다가 따로 갈 수밖에 없는 그 사이, 지상의 모텔에서 또는 모텔 같은 지상에서 당신과 나는 사랑한다. 사랑의 기쁜 숨과 슬픈 눈물과 몸 비린내. 그러다 울고 웃는 어느 날 퇴실을 알리는 신호가 와도 슬픔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시는 말한다. 그것은 만들고 꾸며놓고, 당신과 나를 여기 보낸 이의 것이라고 한다. 과연 슬프지 않을까. 나는, 슬플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가 할 일은 돌아갈 집이 어딘지 모른 채로 지상의 어느 모텔에서 몸과 마음으로 사랑의 그림을 그리는 일일 뿐. <이영광·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