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버찌 도둑-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Wonderful World 2012. 9. 10. 16:25

 버찌 도둑
-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김광규 옮김


어느 날, 새벽 닭이 울기 훨씬 전에

휘파람소리에 잠이 깨어 나는 창가로 갔다.

새벽 어스름이 정원에 가득한데ㅡ우리 벚나무 위에

기운 바지를 입은 어떤 젊은이가 올라와 앉아

신나게 우리 버찌를 따고 있었다. 나를 보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두 손으로

나뭇가지에 달린 버찌를 따서 자기의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누운 뒤에도 꽤 한참 동안

그가 짤막한 노래를 흥겹게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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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너그러워지자. 콧노래를 부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두 손으로” 멀쩡한 남의 버찌를 따는 가난한 젊은이처럼 그렇게 헐겁고, 조금은 태평하게. 브레히트가 스탈린의 철권정치를 피해 덴마크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쓴 시다.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 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후손들에게’)고 썼던 브레히트지만, 이 시절에 소박하고 체온이 느껴지는 시들을 썼다. 버찌를 도둑맞으면서도 오히려 궁핍한 사람끼리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듯 심상하게 잠자리로 돌아가 젊은이의 휘파람소리를 듣는다. 그가 험난한 시대와 날카롭게 대치한 까닭에 마음이 가파르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그가 사람이라는 것이 참 좋다. 우리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 나오는 버찌는 우리가 아는 그 버찌가 아니라 체리쯤을 연상하는 것이 좋겠다. 그 도둑도 참 어리숙하다. 버찌를 두 손으로 따다니! [장철문·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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