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5-진이정(1959~1993)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5-진이정(1959~1993)
나는 빛과 피가 섞인 칸타타를 작곡했노라
차마 현실에게 물고문을 하진 못하겠어
난 성실하게 꿈을 꾸어왔지
우린 꿈과 같이 있기만 해도 스캔들이 났던 거야
혀도 코도 눈도 귀도 몸도 뜻도 없는 천국을 위하여
난 감각기관을 심청이처럼 봉양해 왔다
아버지, 난 모성애를 비판해 왔어요
내 단골 유곽은 화락천에 있다; 외상장부를 가져와 다오
비에 젖은 나뭇잎, 낙엽이 되기 전에 겉늙었노라
여름밤에 인생을 토해 버렸다, 나는 뭔가를 맛보긴 한 것이다
하하, 색소폰의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난 모든 종류의 우상화에 반대하노라, 제석천의 우상화조차
오, 너의 유방을 밤새 주물렀더니 피로하네
내 친구들은 모두 서대문 형무소에 있다
나만이 명월관에 죽치고 있어
또 죽을 꾀를 내누나
사소한 이유로 사선을 넘어간 여자들처럼
내 청춘은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삼바춤을 추며 쿠데타를 모의하고 싶다
남도의 바람을 마시며, 그녀를 생각했노라
나는 경전에 찌들어 있어
도시 게릴라전을 익히느라, 이십대를 보냈다
내가 수호해야 할 도시는 날 건달로 방치했다
한참을 나는 숨죽이고 있었다, 모든 게 현실이었다
민족반역자들이 출세한다, 나는 화장실에서 씩 웃었다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어, 나는 추한 삶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숨 쉴 곳은 어디냐
나는 더 이상 젊은 시인이 아니로다
오랜만에 가로수에 몸을 기대고, 밥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가로수의 피부가 너무나 낯익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로수는 내게 물었다; 왜 이제야 돌아왔느냐고
나는 몸이 다 망가졌기 때문에 돌아왔다고 했다
가로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밥이 꺼졌다
내 인생도 꺼져 있었다
걔네들 이상해, 굶기 전까지 우유와 고기만 먹어왔다는 거야
나의 자비심은 이제 한계를 보인다
아버지, 저 아직 살아 있나이다
콥트 기독교도의 수도원에서 한철을 나고 싶어라
화석, 옛사랑의 화석, 내 발길에 채이네
가슴이 아파, 화석의 가슴에 마음을 비볐네
용감하게 돌진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토너먼트가 아니었다
차라리 고려 왕조가 계속 되었더라면
나는 무신이 되었을 터이다
나, 걸어가리라, 허망을 딛고, 낯선 인연 따라서
백과사전도 없이, 나는 지식인 노릇을 한다
나를 가르친 건 휘중당의 담쟁이덩굴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참기만 해 왔어
그게 인생이란다; 개 같은
나의 무지와 무기력에 혐오를 느끼는 분들께.
나 변하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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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죽은 시인을 말하고 싶다. 요설의 상상력이라는 용어를 진이정의 약력에 덧붙이고 싶다. 죽음 앞의 담담함을 먼저 생각나게 하는 이 시가, 진이정이 스스로 죽음의 기미에 몸을 맡기고 쓴 후일담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여기에는 스스로를 “나는 떠도는 자이므로, 피사 사탑의 기울기에 인생을 걸 것이다”로 인식한 사람의 자의식이 있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연작들은 모두 비꼼과 뒤틀림이라는 언어의 병렬로 이루어져 있다. 한 평론가가 진이정의 시에 대해 지적한 “시적 화자는 자신의 진술을 고결하게 포장하려는 태도를 배제한다”에 진이정의 시학이 있다. 진이정의 요설은 논리의 담론이 아니다. 논리 체계는 아니지만 그 담론의 분석은 이미지의 연결로 가능하다. 그 요설은 별개의 불온한 이미지들의 충돌이다. 그 별개의 이미지야말로 진이정이 바라보는 현상계이다. 밤하늘의 별들 하나하나가 밤하늘이 아니라 흐린 별들의 집합이 밤하늘의 이미지인 것처럼 그의 시의 행간은 필연적으로, 그러나 서로 중력 없이 그렇게 떠 있다. 진이정 시의 이해를 위해 요설의 의미를 되짚을 필요가 있다. 요설의 밑그림은 비틀림이다. 문학의 역사에 요설이 등장한 것은 진지함이 무거워지거나 진지함이 가짜인 시공간일 경우일 때이다. 비틀림과 비꼬임 모두 진지함을 견디지 못한, 아니 진지함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부정의 정신에서 드러난다.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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