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무화과-김지하(1941~)

~Wonderful World 2012. 10. 5. 07:14

무화과  - 김지하(1941~ )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이봐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를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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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일어서려는 의지ㅡ욕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인데ㅡ가 살고 있을 때, 그것이 저 ‘잿빛 하늘’이라든가 하는 것으로 유비되는 장벽에 부딪혀 뻗어나가지 못할 때, 그것을 인연으로 절망은 일어선다. 역설적이게도 절망은 의지가 품은 희망을 양분으로 뻗어나가는 가지이겠다. 어쩌면, 하나는 ‘꽃시절’이 없었다 하고, 하나는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라고 달래며 어깨 겯고 일어나 비틀거리며 가는 그 둘은 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의지를 따라 뻗어가는 희망을 키우는 것도 나요, 그 의지에서 뻗어나온 또 다른 가지를 키우는 것도 나이니 이렇게 마음에서라도 달래며 걸어갈밖에. 둘이

 

무화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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