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말벌을 기리는 노래 - 김진경(1953~ )

~Wonderful World 2012. 11. 6. 07:33

말벌을 기리는 노래 - 김진경(1953~ )



쑥부쟁이며 산국도 시들해진

늦가을 한낮

갈 곳 없는 벌들이

떨어져 한 귀퉁이가 깨어진 배의 단내에 취해

닝닝거리더니

서리 내린 아침

한 귀퉁이가 깨어진 배 얼어붙어 있고

그 위에 말벌들이

배의 단물을 빨던 모습 그대로

여러 마리 죽어 있다.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단내를 쫓아 꿀을 모으던 노동이 향기로운데

이제 그 향기마저 흩어져

껍질이 텅 빌 때쯤

바람이 그를 어디론가 데려가리라.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세상에 천국이 있다면

마지막 수고를 다한 손들이

텅 빈 껍질처럼 가벼워진 모습으로

모여 사는 곳이리라.


대문자로 시작되는 신의 이름을 높이 부르는 목청에도 무연하게 묵묵히 제 길을 걷다 간 사람들을 대문자로 시작되는 이름의 신이 무연하게 고개 돌린다 해도, 나는 그들이 좋다. 이런 말을 한 까닭에, 대문자로 시작되는 이름의 그가 있어서 내게서 무연하게 고개 돌린다 해도 그것을 받으리라. 죽은 뒤에 가는 어느 나라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보다도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살아가는 그것이 내게는 참[眞]에 가깝거나 멀게 느껴지는 까닭에. 그가, 그의 이름을 거짓되게 발음할 줄 모르는 저 꽃과 나무와 벌들에게서 고개 돌리지 않을 것을 확고히 믿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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