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오래된 나무 - 천양희(1942~ )

~Wonderful World 2013. 1. 3. 07:14

오래된 나무 - 천양희(1942~ )

 

소나무들이

성자처럼 서 있다

어떤 것들은 생각하는 것 같이

턱을 괴고 있다

몸속에 숨긴

얼음 세포들

나무는 대체로 정신적이다

고고(高高)하고 고고(固固)한 것

아버지가 저랬을 것이다

오래된 나무는 모두 무우수(無憂樹) 같다

아버지 가고

나는 벌써

귀가 순해졌다

바람 몰아쳐도

크게 흔들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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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닮고 싶은 것 혹은 나무처럼 사는 것은 사람들의 오랜 바람이다. 늘 푸른 모습으로 성자처럼 서 있는 소나무, 하얀 얼굴을 하고 있는 신령처럼 신성한 자작나무, 동구에서 커다란 그늘이 되어주는 푸근한 느티나무를 비롯해 이롭지 않은 세상의 나무들이 있겠는가. 나무들은 하나같이 세파와 시간의 흐름을 차곡차곡 몸 안에 담아 켜켜이 쌓아둔다. 얼음처럼 투명한 세포들이 쌓은 나이테, 그래서 나무는 높고 단단하고 세상의 풍파를 오랜 세월 동안 온전히 몸으로 끌어안은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그런 아버지 같은 나무는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근심을 뛰어넘어 자연과 세상과 조화를 이루는 풍경 같은 경지에 이른 존재이다. 어느새 그런 아버지가 가고 시인 또한 그런 나무가 되어 간다. 나도 비가 오고 바람이 몰아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 같은 오래된 나무가 되고 싶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오래된 나무 - 천양희(1942~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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