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품앗이 - 박성우(1971~ )
어떤 품앗이 - 박성우(1971~ )
구복리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한천댁과 청동댁이 구복리댁 집으로 가서 몇 날 며칠을 자줬다
구 년 뒤, 한천양반이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구복리댁과 청동댁이 한천댁 집으로 가서 몇 날 며칠을 자줬다
다시 십일 년 뒤, 청동양반 돌아가셨다 그만 울어, 두말없이
구복리댁과 한천댁이 청동댁 집으로 가서 몇 날 며칠을 자줬다
연속극 켜놓고 간간이 얘기하다 자는 게 전부라고들 했다
자식새끼들 후다닥 왔다 후다닥 가는 명절 뒤 밤에도
이 별스런 품앗이는 소쩍새 울음처럼 이어지곤 하는데,
구복리댁은 울 큰어매고 청동댁은 내 친구 수열이 어매고
한천댁은 울 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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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아니 존재하는 것이 희한하고 신기해 보일 풍경이다. 구복리 양반이 돌아가시자 한천댁과 청동댁이 두말없이 그 집으로 가서 구복리댁과 며칠 자주었단다. 그리고 9년과 11년의 시차를 두고 한천댁과 청동댁이 겪는 바깥양반을 잃는 슬픔과 상처의 시간에 그들은 전에 그랬듯이 그 집에서 몇 날 며칠을 자주었다. “연속극 켜놓고 간간이 얘기하다 자는 게 전부”인 소박하지만 소중한 품앗이. “자식새끼들 후다닥 왔다 후다닥 가는 명절 뒤 밤에도” 변함없이 이어 가는 이 별스럽지 않은 별스러운 품앗이에서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공간에서의 소중한 삶의 모습을 본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