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다 - 고운기(1961~)
좋겠다 - 고운기(1961~ )
저물 무렵먼 도시의 번호판을 단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빠져나간다
가는 동안 밤을 맞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면 좋겠다
버스를 탄 사람 몇이
먼 도시의 눈빛처럼 보이는데
손님 드문 텅 빈 버스처럼
흐린 눈빛이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면 좋겠다
집에는 옛날의 숟가락이 소담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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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이럴 것이다. 어느새 하루 해가 기우는 저녁 무렵, 먼 도시의 번호판을 단 시외버스가먼 도시의 눈빛을 한 사람 몇을 태우고 출발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터미널을 빠져나간다. 먼 곳까지 가려면 가는 동안 캄캄한 밤을 맞을 것이고 손님 드문 텅 빈 버스의 흐린 눈빛처럼 그 버스에 탄 사람들도 풍성한 손길은 아닐 것이다. 더러는 빈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렴 어떻겠는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그 마음만으로도 평온하고 따듯하고 그곳에서 아침을 맞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무엇보다도 집에는 옛날의 숟가락들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내와 아이들이 소담하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고운기 시인에게도 몇 년 동안 현해탄 건너에서 머물며 공부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객지에서 머물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저녁이면 낯선 거리를 서성였을 그가 이젠 집으로 돌아와 있어서 나는 참 좋다.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아니 돌아갈 집이 있는 내가, 이 시를 읽는 사람들 참 좋겠다. 귀가(歸家), 참 좋은 말이다.<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