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죽북 - 손택수(1970~ )
소가죽북 - 손택수(1970~ )
소는 죽어서도 매를 맞는다
살아서 맞던 채찍 대신 북채를 맞는다
살가죽만 남아 북이 된 소의
울음소리, 맞으면 맞을수록 신명을 더한다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어머니가 그랬다
병든 사내를 버리지 못하고
버드나무처럼 쥐여뜯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흐느끼던 울음에도
저런 청승맞은 가락이 실려 있었다
채식주의자의 질기디 질긴 습성대로
죽어서도 여물여물
살가죽에 와 닿는 아픔을 되새기며
둥 둥 둥 둥 지친 북채를 끌어당긴다
끌어당겨 연신 제 몸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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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을 보면 곤궁하고 고단한 삶의 기억 속에서 길어 올리는 따뜻함이 생각난다. 이 시에서 평생 채찍을 맞으며 몸 바쳐 일만 해 온 소의 운명은 죽어서도 유전이 된다. 죽어서도 “살가죽만 남아” 매를 맞는 소의 울음소리는 병든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에 주저앉아 울던 어머니의 청승맞은 가락과 겹쳐진다. 온순한 채식주의자이고, 질기고 고단한 삶의 숙명을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소와 어머니는 동일한 존재이다. 살아서 채찍을 맞으며 남을 위해 몸 바친 삶을 마치고도 가죽만 남아 북채를 끌어당기는 소. 험난한 세상에 낙오되어 어머니에게 발길질이나 해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피하고 버리기보다는 주저앉아 받아들이는 어머니. 이들은 공통적으로 식물 지향적이고 저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아프고 고단한 삶을 운명처럼 온몸으로 끌어안고 소리를 낸다. 이 떨치고 싶은 그러나 떨쳐지지 않는 고통과 상처. 북채를 끌어당겨 연신 제 몸을 치고 두들겨서 내는 울림, 이것이 시의 본질이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