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성벽(城壁) - 오장환(1918~1951)

~Wonderful World 2013. 3. 22. 04:34

성벽(城壁) - 오장환(1918~1951)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하리라는 성벽은 편협한 야심처럼 검고 빽빽하거니 그러나 보수는 진보를 허락지 않어 뜨거운 물 끼얹고 고춧가루 뿌리던 성벽은 오래인 휴식에 인제는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 않은 터거리처럼 지저분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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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통치가 깊어지는 1937년, 보들레르처럼 위악적이고 고독했을 스무 살 청년이 낡은 성벽을 바라보고 섰다. 세세손손 만년성대하리라는 야심에 빽빽이 쌓은 성벽. 외적의 침략에 맞서 뜨거운 물을 끼얹고 고춧가루를 뿌리고 돌을 굴려 나라를 지키던 성벽은 근대사회에서는 쓸모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이끼가 끼고 등 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하지 않은 지저분한 턱처럼 성벽은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고종 황제 때 승지를 지낸 이의 둘째아들이었지만 성씨보(姓氏譜)를, 그와 같은 관습을 부정한 청년은 퇴락한 성벽 앞에서 보수에 집착해서 진보를 허락지 않은 앞선 세대의 시대착오를, 그것이 낳은 불우한 시대를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청년의 반항이, 부정정신이 시대를 깨어 있게 하고 또 그렇게 만들 것이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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