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옷 짜는 대합실 - 박주택(1959~ )

~Wonderful World 2014. 3. 25. 08:06

옷 짜는 대합실 - 박주택(1959~ )

 

봐, 계단의 빛이 더없이 투명해

마음의 선로가 놓여 있는 거 보여?

아무래도 좋아, 전광판도 이미 그것을 알고 있지

기차가 사람들을 고아로 만든다는 것

무엇을 향해 가는 것은 마음뿐

새들도 피난 간다, 슬로건처럼

바리케이드는 두려움으로 늙어가

(중략)

다만 일생을 갉아먹을 후회가

다시 빛을 기리며 온갖 것에 감길 때

봐, 의자마다마다의 잠 속에서 피어오르는

짜는 소리들,

육체를 쥐어짜며,

옷감 짜는 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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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캄보디아 어느 야시장에 들렀다가 죄다 빠져버린 앞니로 히죽히죽 웃어가며 베틀에 앉아 모포를 짜는 한 여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얼굴 가득 잡힌 주름이 꽤나 깊어 인생살이 몇이련가 짐작이나 해보는데 우리 나이로 마흔이라는 겁니다. 오, 시스터! 더는 할 말도 없고 해서 손이나 꽉 잡았더니만 글쎄 발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것도 각질로 거칠고 까칠까칠한 발뒤꿈치 만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노동의 증거란 바로 이런 당당함일 테지요. 눈이 마주치면 일단 웃고 보는 게 여인이었는데요, 권해주는 머플러 족족 두르다가 내가 내 몫으로 탐한 모포가 하나 있었으니, 이 무거운 걸 대체 왜 예까지 와서 사는지 모르겠다고 구시렁대는 일행들 타박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집은 모포가 하나 있었으니, 기를 쓰고 팔아보겠다고 베틀에서 일어나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아양을 떨던 여인의 손에 모포가 하나 있었으니, 이 늦가을 드라이클리닝해서 킹사이즈 내 침대에 깔았더니 어디어디 명품 아니냐며 누구든 쓸어내리기에 바쁜 모포가 하나 있었으니, 이러니 웃으면 모두에게 복이 온다고들 했나 봐요. <김민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