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강물 - 천상병(1930~93)

~Wonderful World 2014. 4. 5. 07:36

강물  - 천상병(1930~93)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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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서러움이 있어서 이렇게 ‘짐승처럼’ 울고 있는 걸까요.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라면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친구 때문에 고된 옥고를 치르고,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지는 모진 고문을 받았어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고 너그럽게 웃던 시인인데요. 죽음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로 승화시켰던 순도 100프로의 순결한 시인인데요. 분명한 건 자신을 위해 울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가난과 절망과 병마와 함께하였어도 달관한 자유가 만든 천진한 웃음만 남겼으니까요. 뒤틀린 현실에 갈기갈기 찢겼어도 물처럼 담담하고 맑은 기운만 길어올렸으니까요. <강현덕·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