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산사로 가는 길 - 전연희 (1947~ )

~Wonderful World 2014. 4. 5. 07:38

산사로 가는 길  - 전연희 (1947~ )

 

살겠다

살겠다고 냇물이 속살대자

알겠다

알겠다고 꽃잎들이 사운댄다

동안거

스님 여윈 볼

분홍 꽃물

발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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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잘 익어가고 있습니다. 새잎이 돋아난 도토리나무들과 살 오르는 편백나무들이 빽빽한 숲길을 따라 산사에 갑니다. 향긋합니다. 냇물이 이제야 ‘살겠다’ ‘살겠다’며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가며 흐릅니다. 진작에 겨울잠을 털어낸 다람쥐는 숨겨놓은 도토리를 찾느라 부산을 떱니다. 무지개 돌다리의 이끼는 더 파래지고, 부도 밭 근처에는 만개한 꽃들이 뭉게뭉게 떠다닙니다. 포근한 햇살이 산길 옆 바위에 걸터앉아 바람결에 전해오는 풍경소리를 듣습니다. 동안거를 마친 스님이 녹차 밭을 둘러보다가 떨어져 나온 돌 하나를 돌탑 위에 다시 얹습니다. 누구의 소원은 그렇게 다시 이루어집니다. 산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닙니다. 머리 위에 나는 새들도 부처님이라던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두 손을 모아봅니다. 산사에 가는 길입니다.<강현덕·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