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소망 - 김후란(1934~ )
~Wonderful World
2014. 6. 9. 10:27
소망 - 김후란(1934~ )

생애 끝에 오직 한 번
화사하게 꽃이 피는
대나무처럼
꽃이 지면 깨끗이 눈 감는
대나무처럼
텅 빈 가슴에
그토록 멀리 그대 세워 놓고
바람에 부서지는 시간의 모래톱
벼랑 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
곧은 길 한 마음
단 한 번 눈부시게 꽃 피는
대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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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망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비밀이라고 아예 입을 다물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런 소망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인들은 대개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소박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이보다 더 시적인 소망, 즉 ‘대나무처럼’ 되고 싶은 소망을 품은 시인이 여기 있다. 이 시인의 말을 빌리면 “저마다 아름다운 꽃을 다투어 자랑하는 그 많은 식물 가운데 대나무만은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이내 뿌리째 고갈되어 죽는다”고 한다. 바로 이 대나무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고결한 소망이 담긴 시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