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내 작은 비애 - 박라연(1951~ )

~Wonderful World 2014. 7. 8. 01:34

내 작은 비애 - 박라연(1951~ )

 

소나무는 굵은 몸통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빛나는 목재가 되고

오이나 호박은 새콤달콤

제 몸이 완성될 때까지만 살며

백합은 제 입김과 제 눈매가

누군가의 어둠을 밀어낼 때까지만 산다는 것

그것을 알고부터 나는

하필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이 몸을 지배할 때까지만 살지 못하고

몸이 생각을 버릴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단명한 친구는

아침 이슬이라도 되는데 (…)


메디컬 다큐멘터리를 보면, 의약의 급속한 발전을 실감하게 된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는 이제 머지않은 것 같다. 결국 노년의 투병기간이 점점 길어진다. 온전치 못한 몸과 마음으로 오래 살기만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선뜻 넘어설 수 있는 경계선이 아니다.

 가족들이 환자를 이승에 붙잡아 두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것도 임종을 인위적으로 연기하는 데 큰 몫을 한다. 누구도 어느 가족도 이런 상황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생각이 몸을 지배할 때”를 넘어서, “몸이 생각을 버릴 때”가 되어도 의약에 의존해 고통을 연장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

<김광규·시인, 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