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태양이 나에게 그림자를 주었다 - 김명수(1945~ )

~Wonderful World 2014. 7. 28. 06:20

태양이 나에게 그림자를 주었다 - 김명수(1945~ )

 

그래 아이야 너는 물었다

태양이 그늘이 있나요?

그림자가 있나요?

황혼은 태양의 휴식이고

안개는 바다의 그림자일까요?

그래 아이야

영원히 불타는 눈부신 광채

작열하는 태양은 그림자가 없구나

태양이 나에게 그림자를 주었다

수평선이 나에게 안개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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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어디를 가도,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아침에 해가 떠오르고 저녁에 해가 진다. 모든 사물에 빛과 그림자를 주는 그 위력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태양 자체에는 정작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오직 어린아이만이 묻고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끊임없이 “왜? 왜? 왜?” 물어 대서 어른을 곤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의 원초적인 통찰력에 놀라서 옛 시인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읊게 되었을 것이다. 뜨거운 여름 한낮 물놀이를 하고 나온 아이와 함께 그림자를 밟으며 바닷가를 걸을 때, 어른들은 일상적 상념을 맴도는 게 보통인데, 아이는 태양과 바다의 그림자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대답이 궁색한 어른은 밤이 해와 바다의 그늘이라고 둘러대거나, 앞으로 해와 바다처럼 큰 존재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를 눈부시게 바라볼 것이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