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사랑이 읽히다 - 문현미 (1957~)

~Wonderful World 2014. 8. 25. 15:25

사랑이 읽히다 - 문현미 (1957~)

 

 

초록과 연초록 사이로

힐끗 계절이 스쳐 지나갈 때

저 푸르름으로 반짝이는

눈부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

빛나는 꽃의 순간을 숨 가쁘게 꿈꾸며(…)

기억의 성을 쌓고 싶다

너와 나의 안쪽이 바람의 속도로 만나서

찔레 향기 머무는 눈빛의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살아 있음이 아무 죄가 되지 않는 이런 날에는

맹목의 황홀한 죄 하나 짓고 싶다


연초록과 초록 사이의 계절, 봄과 여름 사이의 푸르름 속에 꼭 사춘기가 오는 것은 아니다. 사계절 어느 때인가 “눈부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바로 그때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뜻하지 않았던 이 만남은 전혀 몰랐던 그 누가 ‘너’로 다가오는 데서 시작된다. 이 새로 나타난 ‘너’와 지금까지 있어 온 ‘나’의 내밀한 관계는 바람과 햇살과 물기가 피워낸 꽃이다.

 이 꽃의 향기를 누구나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다. “황홀한 죄 하나” 짓고 싶었던 순간은 그러나 지나간 다음에야 회상하기 마련이다. 흔히 과거시제로 이야기하는 사랑을 우리는 지금 현재시제로 읽고 있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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