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살아 있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중략)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수영(1921~68) ‘눈’ 중에서
나는 20대를 1970년대 유신시대와 함께 보냈다. 김지하 시인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유신에 저항하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았다. 그 무렵 막 문단에 나왔던 나는 불행의 시대를 사는 한 젊은 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올바로 사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갔다. 그때 만난 게 김수영 시인이었고, 그의 시 ‘눈’이었다. 이 시를 읽고 가슴에 켜켜이 쌓인 불의에 대한 분노와 울분이 시원하게 폭발되는 느낌을 받았다. 곪아가던 유신시대의 모든 상처를 치유받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 시대의 청년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시를 열심히 쓰는 일이었다.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등의 내 초기 시는 그러한 가르침이 바탕이 되었다.
가래는 더러움의 상징이지만 이 시에서는 깨끗함과 순결함의 상징이다. 나는 이 시를 통해 정의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고 어떠한 형태로든 현실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시대를 사는 청년이든 그 시대 나름의 절망과 분노에서 오는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시대의 하얀 눈밭에 진실과 정의라는 순결의 가래를 마음껏 뱉자. 결코 침묵하지는 말자.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