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심장을 켜는 사람 - 나희덕(1966~ )

~Wonderful World 2014. 12. 23. 03:10

심장을 켜는 사람 - 나희덕(1966~ )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들이 들어 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오늘도 강가에 앉아

심장을 퍼즐처럼 맞추고 있답니다

동맥과 동맥을 연결하면

피가 돌 듯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지요

나는 심장을 켜는 사람

심장을 다해 부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통증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심장이 벌떡일 때마다 달아나는 음들,

웅크린 조약돌들의 깨어남,

몸을 휘돌아 나가는 피와 강물,

걸음을 멈추는 구두들,

짤랑거리며 떨어지는 동전들,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와 기적 소리,

( … )


이 시인은 처음부터 여성적 감수성의 섬세가 난숙(爛熟)했고 광범한 호평을 누렸지만 시인으로서 크게 행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음악가 모차르트에서 보듯 변하지 않는, 변할 수 없는 난숙 자체는 지루하고 우울하며, 기쁨은 생애 굴곡과 크게 연관된다. 그랬던 시인이 마침내 ‘심장이 벌떡일 때마다 달아나는 음들’을 만났으니 축하 또 축하. <김정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