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검은 빗속에서

~Wonderful World 2015. 8. 17. 18:44

검은 빗속에서 - 우대식(1965~ )

담배 한 갑
커피 넉 잔
저 끝에 소주 한 병
공을 치는 하루
빗방울이 발목까지 왔다 가고
완강한 심줄이 돋아난
몸을 다독여
자리에 눕히는
창밖에는 비
몸은 진진(津津)
흑인 영가처럼 혼자 부르는 노래
내가 어렸을 적
내가 어렸을 적
지금과 똑같이 검은 영혼이었네
빗속에서
검은 빗속에서,

서른 몇 살 때 순식간에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곧 그것을 놓쳤다. 나는 서울을 떠났다. 시골에서 집짓고 살며 혼자 밥 먹고 소주를 마신 채 잠들었다. 내 가슴에 깊은 병이 들어와 살았다. 그 병을 다정한 이웃인 듯 품었다. “병은 나름대로의 규칙과 절도와 침묵과 영감들을 갖춘 수도원 같은 것”(알베르 카뮈). 비 오면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 오면 종일 눈 내리는 풍경을 내다보았다. 나날이 다 실업의 날들이었다. 가슴팍을 쥐어뜯으며 견뎌야 했던 그 실업의 날들! “공을 치는 하루”라는 말이 유독 가슴에 크게 울린다.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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