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밤의 고양이 - 유병록(1982~)

~Wonderful World 2017. 11. 7. 16:06
밤의 고양이
-유병록(1982~ )

 

시아침 11/7


자, 걷자
밤의 일원이 된 걸 자축하는 의미로
까만 구두를 신고
 
정오의 세계를 경멸하는 표정으로
지붕 위를 걷자
불빛을 걷어차면서
 
빛이란 얼마나 오래된 생선인가  
  
친절한 어둠은 질문이 없고
발자국은 남지 않을 테니
 
활보하자 
밤의 일원이 된 걸 자책하는 의미로
까만 구두를 신고
이 세계를 조문하는 기분으로
 
 
오징어는 집어등 불빛을 향해 달려들었다가 죽음과 맞닥뜨린다. 가로등 불빛으로 모여든 불나방 중에는 두꺼비의 먹잇감이 되는 놈도 있다. 이 시에서 빛이란 상투성의 다른 이름이다. 빛 아래에서는 누구나 쓸데없이 질문하고 흔적을 남기려고 애쓴다. 시인은 밤의 고양이처럼 어둠의 편이 되자고 한다. 밤의 일원이 되자고 한다. 이 세계에 대한 조문은 빛을 숭상하는 이 세계에 대한 조롱이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밤의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