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우물 - 이영광(1965~)
~Wonderful World
2017. 11. 13. 11:11
우물
-이영광(1965~ )
우물은,
동네 사람들 얼굴을 죄다 기억하고 있다
우물이 있던 자리
우물이 있는 자리
나는 우물 밑에서 올려다보는 얼굴들을 죄다
기억하고 있다
우물은 가장 깊고 음습하고 무서운 곳이었다. 사람들은 우물을 들여다보며 얼굴만 비춰 본 게 아니었다. 아, 하고 소리를 질러 본 사람, 침을 뱉어 본 사람, 돌멩이를 슬쩍 던져 본 사람, 사는 게 죄다 싫어 우물로 뛰어들어 버릴까 생각하던 사람도 있었다. 우물은 사람들의 젖줄이었고, 마을의 눈동자였다. 우리가 우물을 내려다본 게 아니었다. 우물이 우리를 올려다봤다. 물로 씻을 수 없는 우리의 상처와 허위와 치욕과 죄를 우물은 모두 알고 있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물처럼 깊이를 갖고 있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우물
-이영광(1965~ )

동네 사람들 얼굴을 죄다 기억하고 있다
우물이 있던 자리
우물이 있는 자리
나는 우물 밑에서 올려다보는 얼굴들을 죄다
기억하고 있다
우물은 가장 깊고 음습하고 무서운 곳이었다. 사람들은 우물을 들여다보며 얼굴만 비춰 본 게 아니었다. 아, 하고 소리를 질러 본 사람, 침을 뱉어 본 사람, 돌멩이를 슬쩍 던져 본 사람, 사는 게 죄다 싫어 우물로 뛰어들어 버릴까 생각하던 사람도 있었다. 우물은 사람들의 젖줄이었고, 마을의 눈동자였다. 우리가 우물을 내려다본 게 아니었다. 우물이 우리를 올려다봤다. 물로 씻을 수 없는 우리의 상처와 허위와 치욕과 죄를 우물은 모두 알고 있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물처럼 깊이를 갖고 있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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