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탁! 탁! - 이설야(1968~)
~Wonderful World
2017. 11. 15. 16:14
탁! 탁!
-이설야(1968~)
마을버스에서 내린
맹인 소녀의 지팡이가 허공을 찌르자
멀리, 섬에서 점자를 읽고 있던 소년의 눈이
갑자기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도다리가 잠든 횟집 앞
무거운 책가방을 든 소녀가 휘청거리며 지나간다
오른손에 움켜쥔 지팡이가 갈라진 보도블록을
탁! 탁! 칠 때마다 땅속 벌레들의 고막이 터진다
허공 어딘가 통점을 꾹. 꾹. 찌르며
헛발 딛는 소녀의 종아리가 되어
집을 찾아가는 지팡이
무수한 길들이
종아리 속에 뻗어 있다
이 시는 두 눈을 훤하게 뜨고도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질책한다. 운전대 잡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도 삶의 방향을 찾는 데 실패한 이들을 후려친다. 소녀의 지팡이 좀 봐라. 소녀는 먼 섬의 소년의 눈을 뜨게 하고 벌레들의 고막을 터뜨린다. 작고 힘없는 것들의 연대는 이렇듯 강력하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탁! 탁!
-이설야(1968~)

맹인 소녀의 지팡이가 허공을 찌르자
멀리, 섬에서 점자를 읽고 있던 소년의 눈이
갑자기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도다리가 잠든 횟집 앞
무거운 책가방을 든 소녀가 휘청거리며 지나간다
오른손에 움켜쥔 지팡이가 갈라진 보도블록을
탁! 탁! 칠 때마다 땅속 벌레들의 고막이 터진다
허공 어딘가 통점을 꾹. 꾹. 찌르며
헛발 딛는 소녀의 종아리가 되어
집을 찾아가는 지팡이
무수한 길들이
종아리 속에 뻗어 있다
이 시는 두 눈을 훤하게 뜨고도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질책한다. 운전대 잡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도 삶의 방향을 찾는 데 실패한 이들을 후려친다. 소녀의 지팡이 좀 봐라. 소녀는 먼 섬의 소년의 눈을 뜨게 하고 벌레들의 고막을 터뜨린다. 작고 힘없는 것들의 연대는 이렇듯 강력하다.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탁!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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