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전생의 모습 - 이윤학(1965~ )

~Wonderful World 2018. 1. 9. 09:57
전생의 모습        
-이윤학(1965~ )
 
시아침 12/19

시아침 12/19

작년에 자란 갈대
새로 자란 갈대에 끼여 있다
 
작년에 자란 갈대
껍질이 벗기고  
꺾일 때까지
삭을 때까지
새로 자라는 갈대
 
전생의 기억이 떠오를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전생의 모습  
   
     
시는 죽은 갈대와 산 갈대를 견주어 묘사하다가 전생(前生)이라는 낯선 세계를 보여 준다. 우리는 누구나 ‘새로 자라는 갈대’로 한생을 받아 살고 간다. 다른 생의 존재 유무는 과학으로는 알 길이 없다. 산 갈대들 사이에 ‘작년에 자란 갈대’가 더불어 산다. 갈대들의 세계에서 금생의 갈대는 전생의 갈대를 알아보지 못한다. 바로 곁에 ‘끼여’ 밀착해 있는데도! 한 몸처럼 서 있는 전생을 못 본다는 사실이 은은한 놀람을 준다. 과학은 부인하고 종교는 힘써 믿는 전생을 시는 이렇게, 상상한다. 시에서 상상은 안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이고, 묘사란 보이는 것에 대한 상상이다. 전생을 갈대로 묘사하는 것과 갈대를 전생이라 상상하는 것은 같은 일인데, 이런 일이 이 시에서만큼 비범해지기는 늘 어렵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전생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