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눈 사람-김막동(1935~)
~Wonderful World
2018. 1. 11. 16:44
눈사람
-김막동(1935~ )
어렸을 때 만들어 본
눈사람
크게 만들고
작게 만들고
숯뎅이로 껌장 박고
버선 씌워 모자 만들고
손도 없고 발도 없어
도망도 못 가는 눈사람
지천 듣고 시무룩
벌서는 눈사람.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옥 뜰에 세워 둔 눈사람 얘기가 나온다. 그 사람의 가슴에는 ‘나는 걷고 싶다’는 문장이 연탄 조각들로 박혀 있다. 수인의 처지가 다리 없는 눈사람과 같다고 한 상상은 아팠다. 김막동 시인의 이 시도 비슷한 아픔을 노래한다. 어려서 만들던 눈사람을 떠올리게 한 것은 옥에 갇힌 듯 탈출구 없던 인생살이였을 것이다. 옛 노래 '시집살이요'에는 ‘시집살이 개집살이’란 말이 나오지만, 현대의 어떤 이들에게도 가정은 도망치고 싶은 곳이었을 수 있다. 시는 눈사람에게 발을 만들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입을 열어 말을 하게는 할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의 그 글에서 눈사람은 며칠 후 녹아 없어진다. 어딘가로 발 없이 걸어간 것이다. 이 시의 눈사람도 그와 같을 것이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