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들, 시인들
눈 -윤금순(1937~ )
~Wonderful World
2018. 1. 19. 07:11
눈
-윤금순(1937~ )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전라도 곡성의 할머니들이 뒤늦게 글을 배워 시를 써서는 '시집살이 시(詩)집살이'라는 책까지 냈다기에 호기심에 읽어보았다. 놀랐다. 시가 비슷해서가 아니라 좋은 시들이어서였다. 어설픈 기교와 겉치레 수사가 가신 삶의 기록들을 읽다 보니, 시란 원래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졌다. 윤금순 시인의 이 짧은 작품에서 ‘살았다’와 ‘견뎠다’는 같은 말이다. 삶은 견딤이었고 견딤이 곧 삶이었다. 무엇을 살아내고 무엇을 견뎌냈는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의 늙은 어머니들이 “아이구야, 말도 말도 말거라” 할 때의 그 손사래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저 ‘잘’이라는 말 앞에서 숙연해진다. 이 한 글자에는 한 사람의 정직한 인생 소감이 풍파와 애환을 전혀 잃지 않고 오롯이 응축돼 있다. 하느님의 발걸음처럼 와서 속삭이는 ‘눈’은 그 생에 대한 하염없이 정확한 축복이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눈
-윤금순(1937~ )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전라도 곡성의 할머니들이 뒤늦게 글을 배워 시를 써서는 '시집살이 시(詩)집살이'라는 책까지 냈다기에 호기심에 읽어보았다. 놀랐다. 시가 비슷해서가 아니라 좋은 시들이어서였다. 어설픈 기교와 겉치레 수사가 가신 삶의 기록들을 읽다 보니, 시란 원래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졌다. 윤금순 시인의 이 짧은 작품에서 ‘살았다’와 ‘견뎠다’는 같은 말이다. 삶은 견딤이었고 견딤이 곧 삶이었다. 무엇을 살아내고 무엇을 견뎌냈는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의 늙은 어머니들이 “아이구야, 말도 말도 말거라” 할 때의 그 손사래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저 ‘잘’이라는 말 앞에서 숙연해진다. 이 한 글자에는 한 사람의 정직한 인생 소감이 풍파와 애환을 전혀 잃지 않고 오롯이 응축돼 있다. 하느님의 발걸음처럼 와서 속삭이는 ‘눈’은 그 생에 대한 하염없이 정확한 축복이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