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작년 그 꽃-윤제림(1960~)

~Wonderful World 2018. 2. 19. 21:11
작년 그 꽃  
-윤제림(1960~ ) 
 
말이 쉽지, 
딴 세상까지 갔다가 
때맞춰 돌아오기가 
어디 쉬운가. 
모처럼 집에 가서 
물이나 한 바가지 얼른 마시고 
꿈처럼 돌아서기가 
어디 쉬운가. 
말이 쉽지, 
엄마 손 놓고 
새엄마 부르며 달려오기가 
어디 쉬운가. 
 
이 꽃이 그 꽃이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나무꾼은 사슴의 도움으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 산다. 어머니가 그리워도 꾹 참았으면 좋았을걸. 내려와선 물 한 그릇만 마시고 얼른 떠났으면 좋았을걸. 팥죽은 쏟아지고 천마는 떠나고 그는 다시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 이 세상과 딴 세상 사이엔 이처럼 생사의 심연이 놓여 있다. 사람은 살아서 못 건너는 심연을 꽃은 매년 건넌다. 물 한 모금 급히 마시고, 엄마 손 놓고, 휘딱 돌아서 온다. 여러 번 사는 꽃은 아름답다. 이 세상이 뭐라고, 한 번씩 필 때마다 한 번씩 죽음의 강을 건너는 꽃들은 감동스럽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