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지울수 없는 얼굴-고정희(1948~1991)
~Wonderful World
2018. 2. 20. 16:11
지울 수 없는 얼굴
-고정희(1948~1991)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에 대한 온갖 수식어들은 모두 맞는 말이지만, 어느 것도 당신을 정확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정확히 아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당신은 천(千)의 얼굴로 다가오고 나는 그 얼굴들을 빠짐없이 말해보려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랑은 내 표현력의 범위를 벗어난다. 사랑은 크고 말은 작다. 사랑은 말로 다 적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영광 시인·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지울 수 없는 얼굴
-고정희(1948~1991)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
따뜻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내 영혼의 요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샘솟는 기쁨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이 세상 지울 수 없는 얼굴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에 대한 온갖 수식어들은 모두 맞는 말이지만, 어느 것도 당신을 정확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정확히 아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당신은 천(千)의 얼굴로 다가오고 나는 그 얼굴들을 빠짐없이 말해보려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랑은 내 표현력의 범위를 벗어난다. 사랑은 크고 말은 작다. 사랑은 말로 다 적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영광 시인·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지울 수 없는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