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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에게-(1950~)

~Wonderful World 2018. 2. 21. 09:47
햇살에게  
-정호승(1950~ )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자는 햇살에 힘입어 먼지를 보고, 자신이 먼지에 불과한 걸 알게 되고, 그런 자신에게 여전히 해가 비추는 걸 확인한다. 이 모든 것에 그는 감사한다. 자신이 먼지임을 알게 된 사람이 햇살 세례에 고마워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그것에 고마워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침침한 구석의 먼지들은 쉽게 쌓이고 뭉쳐진다. 그래서 무언가 그럴듯한 존재인 것 같지만, 해 아래서 먼지는 명백히 먼지다. 마음을, 존재를 백일하에 두는 일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그는 먼지 아닌 어떤 찬란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