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시가 있는 아침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이성복(1952~)

~Wonderful World 2018. 3. 1. 20:44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이성복(1952~ ) 
 


물이 밀려온다 
밀려오면서, 
고운 모래를 뒤집어놓는다 
 
물새들은 어째서  
같은 방향만 바라볼까 
죽은 물새를 추억하는 
자세가 저런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서럽지도 않은 것들이 
일제히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감각과 주의력을 다해 살아도 생활은 따분하고 무감각할 때가 많다. 우리는 여럿이 있어도 따로 살고 혼자 논다. 모두가 한꺼번에 무엇에 얼어붙는 일은 드물다. 저 바다의 물새들은 왜 일제히 같은 곳을 바라볼까. 아니, 무엇을 보는 걸까. 죽음 저편을 끌어와 시인은 여기 없는 곳을 잠깐 암시하지만, 풍경에도 시의 풍경에도 그 자취는 희미하다. 그런데도 새들은 일제히 어떤 ‘안 보이는 곳’에 사로잡혀서, 우리 눈을 문득 사로잡아버린다. 서럽지 않은 것들은 하염없이 서럽다.  
 
<이영광 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