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1954~ )

시아침 7/12
어릴 적 국광 껍질 정말 타개졌는데 '타개지다'라는 말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생애의 껍질로 들어섰다.
저물녘 아이 부르는 소리 들렸다,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는데 어두워지는, 한, 오십년 전 골목, 어머니.
늦게 익는 국광은 추위에 살이 트듯 갈라진다. ‘타개지다’는 이 뜻이다. 말도 사과도 사라져간 세월에 인생은 부르텄다. 그는 반세기 저편 골목길을 떠올린다. 얼른 와, 밥 먹어야지 부르던 먼, 어머니 목소리. 국광이란 말 속엔 빛이 들어 있었는데, 이 저녁은 금세 어두워진다. 그가 멀리 떠나왔기 때문이다. 아니, 바삐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어둡다 하면 어둡다 믿고 뛰어가는 예순 살, 김정환 어린이.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국광(國光)과 정전(停電)